본문 바로가기
기록

광복절을 기념하며, 봉오동 전투

by 넫챠미K 2021. 8. 14.
728x90
반응형
SMALL

 

- 광복절을 맞아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를 하나 보았다.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서, 연출이 어떻고, 줄거리가 어떻고를 떠나서, 독립 운동가들의 투쟁과 희생에 항상 눈물이 나는 것 같다.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"재미없는 영화, 뻔한 영화" 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왠지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에 대해서는 무슨 국뽕을 맞은 것 마냥 항상 뻔하게 감동 받는다.

 

- 18년도였나... 상해 여행에서 방문했던 상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 청사. 그 곳에서 느꼈던 강렬한 감정이 나에게 제대로 박혀있다. 역사 기행이다 수학 여행이다 뭐다 역사적인 장소들을 수도 없이 많이 다녔건만... 그 경험들은 역사를 배웠다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, 역사를 느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. "역사를 느꼈다"고 말할 수 있는 건 상해 여행, 그 여행 뿐이었다. 

 

- 상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 청사. 그 곳은 그저 상하이를 온 김에 유명하다는 곳을 가보는 정도의 평범한 여행 코스의 일부였을 뿐이었다. 나는 그때 시험을 치러 상해를 갔던 것이었고, 시험 공부는 하나도 못 했는데 시험 비용이며 항공권이며 숙소며 돈이란 돈은 다 들어간 상태였다. 원래 일을 미루는 성향이긴 했지만 그래도 결국 끝에 가서는 어떻게든 해낸다고 믿었는데 그때 정신 머리는 지금 봐도 노답 그 자체였다. 미루고 미루다 결국 바리깡으로 머리 밀듯이 시험까지 깨끗하게 말아먹었다. 하지만 정말 바보 같게도 해야할 일을 미루는 동안 결코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. 차라리 마음 편하게 말아먹었으면 좋았을 것을 온갖 스트레스는 다 받으면서 할 일도 제대로 못 한 최악의 인간이었다. 나는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뒷통수가 찌릿하면서 소름이 끼치는 증상이 나타나는데, 그때는 시험 보는 당일까지 하루에도 몇번씩 그 증상이 나타났을 만큼 극한의 스트레스를 아주 반복적으로 아주 빈번하게 받고 있었다. 말 안 통하는 타지에 가서 시험을 봐야하니 처리할 일도, 대비할 일도, 걱정할 일도 많았다. 긴장도 많이 됐을 거고, 시험 전날 숙소에 도착해서는 그 긴장이 풀렸는지 아니면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는지 몰라도 전화기를 붙잡고 친구들에게 전화해 몇 시간을 서럽게 울었다. 시험을 다 치르고 시험장이었던 대학교를 빠져나가는 길에 서서히 시험이 끝났다, 이 고생이 끝났다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. 막상 끝나니 시험을 어떻게 준비했는지, 어떻게 봤는지는 다 까맣게 잊혀지고, 왜 스트레스 받았는지, 왜 울었는지도 어느새 한발짝 떨어져서 보게 되니 웃기기까지 하더라. 그날 저녁 숙소 근처에 있는 까르푸에서 산 맥주와 야시장에서 이것저것 산 음식을 먹으며 자축했던 걸로 기억한다. 어이없는 희노애락의 시간이었다ㅋㅋㅋ 스스로 참 애새끼같다고 느끼기도 했다. 이 모든 희노애락이 끝나고 드디어 여행의 시작이었다. 그 여행의 첫날이었는지 둘째날이었는지 코스 중 하나가 임시정부 청사였다. 

 

- 지루한 역사 관광 코스에 방심한 나를 울컥하게 만든 것은 어떤 문서였다. 뭔지 정확히는 기억 나지 않지만 서양 강대국들에게 우리나라 독립 좀 시켜달라고 말하는 문서였던 걸로 기억한다. 그때 내가 어디 와 있는지도 알게 됐다. 아, 나 지금 상하이에 와 있네. 왜 우리나라 임시 정부가 상하이에 있는데 그게 이상하지 않았을까. 한번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. 역사적 사실 말고 그 역사 속 사람들을, 그 인생을, 그 마음을 한번도 들여다보려고 한 적이 없었다. 이 사람들... 자기 인생을 바쳐서 말 안 통하는 외국에서 말 안 통하는 외국 사람들한테 작고 약한 우리 나라 독립시켜달라고 말하고 있었다. 나는 이 편리한 시대에 비행기 타고 중국 넘어가서 택시 타고 버스 타고 숙소에서 잠자고 시험장 찾아가서 나 좋자고 보는 시험을 치르는 것조차 뒷통수가 저릿거릴만큼 엄청난 스트레스인데 말이다. 그마저도 엄청 서러웠는데 말이다. 그 사람들 인생을 바쳐서 우리나라를 위해 그 서러운 날들을 보내왔다고 생각하니 정말 눈물이 날 만큼 부끄러워졌다. 동시에 김구며 안중근이며 국사책에서나 보던 독립 투사들의 얼굴에서 서러움은 커녕 용맹함이 느껴져서 더 부끄러웠고 가슴이 뜨거워졌다. 얼굴이 새빨개져서, 특히 눈과 코가 새빨개져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이게 뭐지? 이게 무슨 감정이지?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다. 스스로도 너무 갑작스러운 울음이라 약간 민망하기까지 했다. 주변 시선이 의식돼서 사람들 없는 구석 벽만 찾아다니며 그 곳을 열심히 둘러봤던 기억이 난다...

 

- 정말 부끄럽게도 수많은 위인전을 읽으면서도 한번도 진심에서 우러나온 존경심, 감사함, 부끄러움 심지어 애국심까지... 나는 이런 감정들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.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수록 그때 느꼈던 그 위대함은 점점 더 커지기만 한다.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소인배 같아졌기 때문일 것이다. 그 곳에서 느꼈던 감동과 부끄러움에 눈물까지 흘렸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나밖에 모르고, 더 작은 세상에 집착하고, 더 두려워하고 덜 용맹해졌기 때문이다. 그래... 참 비극적이게도 내가 더 작은 인간이 될 수록 그들은 더욱 위대하게 느껴진다. 그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, 그들은 정말 위대한 일을 했다, 라고 점점 더 자주 말하게 되지만 나는 왜 그들과 닮아가려 하지 않는가... 그 죄책감이 날이 갈수록 커져간다. 

 

- 가끔씩 이런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 죄책감을 덜기 위한 것이 아닐까, 그런 간사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. 하지만 죄책감도 성숙의 일부라 생각하자. 그리고 결말로서의 죄책감이 아니라 어떤 결심과 행동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속에 두어야 할 것이다. 그건 지금의 내 몫이다. 내년 광복절에는 그 눈물이 죄책감이 아니라 어떤 뜨거운 결심이 될 것이라 믿는다.  

 


- 잠깐 생각난 김에 상해 오열 사건의 복잡한 심정과 상황을 기억나는 대로 적어본다. 몇년만에 다시 떠올려보자니 벌써부터 기억이 흐릿하다. 역시 흑역사는 오래 기억하려 하지 않는구나... 간사하군...ㅋㅋㅋㅋ (다시는 이런 흑역사는 만들지 않길 바란다) 

- 공부는 하나도 안 했는데 시험은 당장 코 앞이다보니, 시험 볼 생각만 하면 모르는 문제만 적힌 시험지를 받아든 것처럼 벌써부터 속이 울렁울렁 거렸다. 그렇다고 아예 안 할 순 없어서 그 두꺼운 책을 어떻게든 뒤적이면서 어떻게든 해보긴 하는데 머릿속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. 그냥 한 문제라도 정확히 맞추는 게 나을까 싶어서 할 수 있는 데까지 꼼꼼하게 공부할까 싶다가도, 쉬운 문제만 맞추는 게 나을까 싶어서 대충이라도 전부 볼까 싶기도 하고... 몇번이고 책의 목차를 봤다가 내용을 봤다가 답지를 봤다가 부록을 봤다가.. 하여튼 그랬다.

- 캐리어 무게는 정해져있는데 저 책을 두고 가자니 필요할 때 없으면 불안할 것 같고... 공부를 안 했으니 요약본도 없고, 시험 전날 나에게 정확히 무엇이 필요한지 몰랐다. 에라 모르겠다 하고 다 쑤셔넣으니 캐리어는 잠기지도 않았다. 겨우겨우 불안한 걸 참고 고르고 골라서 넣어놓고 보면 이마저도 무게를 초과할까 덜컥 무서워지고 그랬다. 

- 비자 발급, 해외 로밍, 출국 수속, 숙소 가는 길, 시험장으로 가는 길... 하나하나 다 스트레스였다. 이래서 돈 많은 사람들은 비서를 두는 구나 싶었다. 이런 것들은 다 비서한테 맡기고 나는 맘 편히 공부만 하고 싶었다. 맘 편히 공부할 시간은 다 낭비해놓고 이런 염치없는 생각도 해봤다. 

- 시험 전날,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상하이에 내려서 택시타고 버스타고 어찌어찌 숙소에 도착했다. 이것저것 다 끝내고 공부 좀 해볼까 하니 시간은 저녁이더라. 근데 공부를 도저히 못 하겠더라. 전부 안 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었다.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는지... 왜 여기까지 올 줄 알았으면서 그동안 그렇게 대책없이 시간을 버렸는지... 정말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. 진짜 애새끼 같게도 그런 순간이 되니까 왜 엄마가 보고 싶더라... 가장 나약해질 때 찾는 게 엄마라니... 정말 애새끼 같았다. 근데 엄마는 전화를 안 받고... 친구들 한명 한명 전화를 거는데 하필 그 시간에 전화 받는 애들이 왜이렇게 없는지... 한명 한명 부재중 전화가 찍힐 때마다 눈물이 더 나더랔ㅋㅋㅋㅋㅋ 그러다가 받은 친구 몇몇은 아직도 나의 흑역사를 생생히도 기억하고 있다ㅋㅋㅋ 너 상하이 가서 울었잖아, 아주 오열을 하던뎈ㅋㅋㅋㅋㅋ 네... 죄송합니다ㅜㅜㅜㅜ 결국 그날 저녁은 공부는 하나도 못 했고, 친구들이랑 통화하고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며 긴장감이며 다 쏟아내는 시간으로 보냈다. 울고 나니 홀가분한 웃음이 났던 걸 보면 (민망함이 섞인 울음이긴 했지만) 그 날 저녁엔 공부하는 것보다 막 울고 불고 쏟아내는 게 나한텐 더 맞았다.

- 시험은 두개였는데, 그나마 벼락치기라도 했던 하나는 운 좋게 붙었고 (항상 막상 해보면 현실은 걱정했던 것만큼 최악은 아니라는 교훈...) 붙은 과목에 몰빵하느라 완벽히 버려진 다른 하나는 당연히 떨어졌다. 시험을 본 당일은 당연히 둘 다 떨어졌을거라고 생각했는데, 시험 끝났을 때 그렇게 후련하고 살 것 같았다. 전날 전화해서 오열했던 친구들은 걱정이 돼서 문자든 전화든 다시 연락을 주었는데... 다들 내가 너무 기분 좋아하는 걸 보고 어이가 없어서 웃더랔ㅋㅋㅋㅋ 나같아도 어이 없을듯...

 

 

 

728x90
반응형
LIST

'기록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8/16  (0) 2021.08.16
8/15  (0) 2021.08.15
8/14  (0) 2021.08.14
8/13  (0) 2021.08.13
8/11  (0) 2021.08.11

댓글